사흘 밤낮, 경옥고 한 항아리에 담긴 시간¶
민성의담 · 열두 번째 이야기
『동의보감』의 첫 처방에서 만나는 양생과 네 재료의 배합
생지황은 찧어 즙을 짜고, 인삼과 백복령은 곱게 가루를 낸다. 정제한 꿀을 섞어 항아리에 담는다. 준비가 다 끝난 듯하지만 이제부터 사흘 밤낮을 달여야 한다. 『동의보감』에 적힌 경옥고 만드는 법이다.1
경옥고에는 『동의보감』을 읽을 때 기억해 둘 특별한 자리가 있다. 본문을 순서대로 읽을 때, 독립된 처방 항목으로 가장 먼저 만나는 약이 경옥고다. 내경편 권1 신형(身形), 「양성연년약이(養性延年藥餌)」의 첫머리에 놓여 있다.1
『동의보감』의 처방은 경옥고에서 시작한다¶
『동의보감』은 책을 펼치자마자 약재 목록부터 내놓지 않는다. 먼저 사람의 몸과 기운, 나이에 따른 변화, 몸을 기르는 여러 생각을 신형문에서 다룬다. 그렇게 몸과 양생을 이야기한 뒤, 양성연년약이에서 구체적인 처방들을 제시한다. 그 순서가 경옥고, 삼정환, 연년익수불로단으로 이어진다.1
양성연년약이의 첫 문장은 실제로 “瓊玉膏、三精丸、延年益壽不老丹……”이라고 처방 이름을 열거한다. 이어지는 개별 처방의 첫 제목도 ‘瓊玉膏’다.1 경옥고가 첫 번째라는 말은 이 배열에서 나온다. 몸을 기르는 이야기를 충분히 한 뒤, 처음 소개하는 처방이 경옥고인 것이다. 모든 약의 효능에 순위를 매긴 자리는 아니지만, 『동의보감』이 양생을 얼마나 앞에 두었는지는 이 배치만으로도 알 수 있다.
『동의보감』의 경옥고 항목을 펼치면 네 재료를 섞어 항아리에 담는 장면이 나온다. 생지황은 즙으로, 인삼과 백복령은 고운 가루로, 백밀은 정제한 꿀로 준비한다. 항아리의 입구는 물 위로 나오게 하고, 물을 사이에 두고 가열한다. 여기서 끝나는 시간이 사흘 밤낮이다.1
煮三晝夜。 “사흘 밤낮을 달인다.”1
그 사흘 동안에도 그냥 두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제법에는 물을 살피는 손길까지 적혀 있다.
如鍋內水減,則用煖水添之。
“솥 안의 물이 줄어들면 따뜻한 물을 더한다.”1
여기서 더하는 물은 경옥고 재료에 붓는 물이 아니라, 항아리를 둘러싼 솥의 물이다. 앞 문장에서 항아리 입구를 수면 위로 나오게 한다고 적은 것과 이어 읽으면 그 위치가 분명해진다. 불을 지키면서 솥의 물도 계속 살펴야 했던 것이다.
그 사흘이 지나도 제법은 끝나지 않는다. 원문에는 식히는 과정과 다시 가열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경옥고의 이름만 알고 있던 독자라면, 약재 목록만큼이나 제조 과정이 길다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의서보다 앞서 실록에 등장한 이름¶
경옥고는 『동의보감』이 간행되기 전 조선의 기록에도 등장한다. 『명종실록』 명종 22년, 1567년 음력 1월 5일 기사에는 내의원이 경옥고·생지황·전약을 왕에게 올리겠다고 청했고, 왕이 허락했다는 내용이 있다.2
왕의 허락까지는 기록에 남아 있다. 그 뒤 얼마나 먹고 어떻게 나았는지는 이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동의보감』의 첫 처방으로 만난 이름이, 그보다 앞선 왕실의 약 이야기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은 반갑다.
실록은 약을 올리자고 청하던 날을 남겼고, 의서는 그 약을 만드는 긴 과정을 남겼다. 두 기록을 나란히 놓으니 경옥고 한 항아리에 얽힌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진다.1
생지황의 즙과 꿀 사이에 인삼·복령이 놓인다¶
경옥고를 인삼이 들어 있는 보약으로만 기억하면 나머지 배합을 놓치기 쉽다. 네 재료를 전통적인 처방 해석으로 읽으면, 인삼의 보기와 생지황의 양음·생진, 복령의 건비, 꿀의 보중·윤조가 한 구성 안에 놓인다.
전통적으로는 인삼이 기를 보하고, 생지황이 진액을 도우며, 복령이 비위를 받친다고 설명한다. 꿀은 보하고 윤택하게 하는 역할과 함께 재료를 엉기게 해 고제의 형태를 만든다. 네 재료의 설명은 경옥고 구성 문서에 더 자세히 담았다.
여기서 생지황은 숙지황과 구별한다. 원문이 적은 것은 생지황을 찧어 짠 즙이다. 같은 지황이라는 이유로 숙지황을 넣은 처방까지 모두 이 경옥고와 같은 것으로 읽으면, 재료의 가공 상태와 제형이 달라졌다는 사실이 가려진다.
시간도 처방을 읽는 단서가 된다¶
원문의 제조법을 오늘의 조제품과 분 단위로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용기와 열원, 배치의 크기와 제조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옛 제법을 집에서 그대로 따라 하라는 안내로 읽을 필요도 없다.
다만 이 기록은 경옥고를 이해할 때 무엇이 들어갔는가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함께 봐야 한다는 단서를 준다. 생지황의 즙과 분말, 꿀을 섞는 것에서 시작해 가열·농축·보관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고제의 성격을 만든다. 오늘날에는 원료·제조 품질 안내에서 실제 구성과 제조 기준, 보관 조건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의 몸을 살피며 양생을 읽기¶
공기의 습도가 낮아지면 피부가 건조해질 수 있다. 이때는 보습과 생활환경을 함께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된다.3 입이 계속 마르는 경우에는 복용약, 당뇨병이나 쇼그렌병 등 여러 원인도 확인해야 한다.4 피부의 건조함과 입마름을 모두 같은 상태로 묶을 수는 없다.
한의학에서도 건조감과 피로가 함께 있을 때 갈증·열감·식사·대변·수면의 양상을 함께 살펴 보익과 윤조의 방향을 판단한다. 현재 몸의 변화와 소화 상태를 설명하면 어떤 점을 보하고 조절하려는지 처방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봉밀이 들어 있는 제형이므로 혈당 관리가 필요한 사람은 당류와 실제 복용량도 확인한다.
사흘 밤낮이라는 말을 알고 나면 경옥고의 이름 옆에 항아리 하나가 떠오른다. 즙과 가루와 꿀을 한데 담고, 끓는 물 사이에서 오래 달이던 항아리다. 『동의보감』의 처방 이야기는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약에서 시작한다.
함께 읽기¶
경옥고의 구성과 현대 연구 · 『동의보감』 경옥고 원문 해설 · 피로보약·기력회복에서 확인할 것 · 보약에도 흐름이 있다 — 공진단의 네 약재
출전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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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 『동의보감』 내경편 권1, 신형, 「양성연년약이」의 「경옥고」. 아카이브 원문과 위키문헌 전사의 해당 항목을 확인했다. 아카이브 전사는 수정판 2308308을 사용하며 출처·CC BY-SA 4.0 이용조건을 원문 열람 안내에 표시한다. 처방 목록의 첫 부분과 짧은 제법 구절을 인용하고 이 글에서 번역했다. 배합 역할은 전통적인 처방 해석이며 현대 임상효과의 입증과 구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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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명종실록』 34권, 명종 22년 1월 5일 신유 두 번째 기사. 왕실의 진어 요청 기록을 요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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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Academy of Dermatology, Dry skin: Overview. 낮은 습도와 피부 건조, 보습 및 다른 원인 평가에 관한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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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DCR, Dry Mouth. 지속되는 입마름의 원인과 평가에 관한 안내. 경옥고의 치료 효과를 평가한 자료는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