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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 책머리에서 걱정한 것은 약값이었다

민성의담 · 스물한 번째 이야기

몸 안과 몸 밖을 나눈 책에, 약을 마련하는 집의 사정도 들어 있었다

허준은 『동의보감』의 편찬 원칙을 설명하다가 이런 말을 꺼낸다.

貧寒之家,何以辦此?

“가난한 집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마련하겠는가?”1

의서를 읽다가 만나기에는 뜻밖의 질문이다. 앞에서는 사람의 몸과 책의 구성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이야기가 어느새 약재를 살 형편으로 옮겨 간다. 옛 처방에 적힌 약재 분량이 너무 많아 갑자기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 허준의 걱정이었다.

이 문장이 들어 있는 「집례(集例)」는 책을 어떤 기준으로 엮었는지 알려 주는 글이다. 본문에 앞서 있으니 그냥 넘기기 쉽다. 하지만 몇 쪽 안 되는 글 안에는 허준이 독자에게 무엇을 보여 주려 했는지, 그 독자가 어디서 곤란해질지까지 적혀 있다.

병을 찾기 전에 몸을 펼쳐 놓다

「집례」의 첫머리는 몸 안에 오장육부가 있고, 바깥에는 근육·뼈·살·혈맥·피부가 있다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정·기·신은 장부와 온몸을 주관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책도 그 이해를 따라 나누었다.1

先以內景精氣神藏府爲內篇,次取外境頭面手足筋脉骨肉爲外篇。

“먼저 몸 안의 정·기·신과 장부를 내편으로 삼고, 다음으로 겉의 머리와 얼굴, 손발과 근맥·뼈·살을 외편으로 삼았다.”1

내경편과 외형편이 앞에 오는 이유다. 그 뒤로 여러 병의 증상을 모은 잡병편을 두고, 마지막에 탕액과 침구를 놓았다. 다섯 편의 구성이 한꺼번에 보인다.

내경을 오늘의 내과, 외형을 외과로 바꾸어 읽으면 이 순서가 잘 보이지 않는다. 현대 진료과를 나눈 것이 아니라, 당시 이해한 몸 안의 기능과 겉으로 드러난 부위를 먼저 펼쳐 놓은 것이다. 병의 이름만 따라가게 하지 않고, 그 병을 앓는 몸을 어느 자리에서 살필지도 정했다.

허준은 독자가 책을 펼쳐 상태의 가볍고 무거움을 분별하고 잘못 치료하는 일을 피하기를 바랐다. 「집례」에 적힌 편찬 목적이다. 책이 실제로 모든 오진을 막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지식을 많이 모으는 것과 독자가 판단하기 좋게 놓는 것이 서로 다른 일임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많아도 문제, 줄이기만 해도 문제

몸의 구성을 설명한 뒤 허준은 처방의 분량으로 시선을 돌린다. 『국방』 등에 실린 한 제의 분량이 너무 많아 가난한 집에서는 마련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1 책에 적혀 있다는 것만으로 그 약이 환자의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모든 처방을 똑같이 작게 줄이는 방식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전체 분량을 일률적으로 정해 놓으면 네댓 가지 약재가 든 처방과 스무서른 가지가 든 처방이 달라진다. 가짓수가 많을수록 각 약재에 돌아가는 양이 너무 적어진다고 본 것이다.

이를 설명한 뒤 허준은 참고한 의서의 방식을 따라 처방을 한 첩 분량으로 환산해 쓰겠다고 밝혔다. 그의 표현으로는 ‘제용지편이(劑用之便易)’, 곧 약을 짓고 쓰기 편하게 하려는 일이었다.1

당시 정한 분량을 지금 개인의 복용량으로 옮길 수는 없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편집자의 작업이다. 원래 책에 적힌 숫자를 그대로 옮겨 놓지 않고, 실제 약을 마련하고 나눌 사람의 손을 생각하며 다시 정리했다.

우리말 약초 이름이 들어간 자리

본초를 정리하는 원칙에도 비슷한 고민이 이어진다. 허준은 약재에 관한 책이 방대하고 설명도 서로 달라, 당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재료가 많다고 적었다. 그래서 실제로 쓰는 약재를 추리고, 우리 땅의 약재에는 우리말 이름과 산지, 채취할 달과 말리는 방법을 적겠다고 했다.1

약재를 멀리서 어렵게 구해야 하는 폐단을 줄이려는 뜻이었다. 책 속 한자 이름을 아는 것과 산과 들의 식물을 알아보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세종 때 약초 이름과 채취한 사람을 기록한 일을 떠올리면, 이 빈틈을 메우려는 노력이 허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점도 보인다.

「집례」는 끝에서 책 제목의 ‘감(鑑)’을 거울에 빗대어 풀이한다. 펼쳐 보았을 때 병의 경중이 거울처럼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1

그 거울에 담으려 한 것은 병의 모습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약재가 너무 많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한 첩으로 나누기 편한지, 우리말로는 무엇이라 부르는지. 「집례」를 읽고 나면 『동의보감』의 목차 뒤에서 약을 구하고 짓는 사람들의 사정도 함께 보인다.

책의 첫 처방인 경옥고로 넘어가면 이번에는 한 항아리의 약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허준이 책머리에서 말한 ‘마련하는 일’은 본문에서도 꽤 구체적이다.

출전과 참고 자료


  1. 허준, 『동의보감』 「집례」. 위키문헌 한문 전사. 다섯 편의 편제, ‘貧寒之家何以辦此’, 약재 가짓수와 한 첩 분량, 향명·산지·채취와 건조, 서명의 ‘鑑’에 관한 부분을 읽고 직접 풀었다. 원문의 도량형은 역사적 편찬 원칙을 설명하는 범위에서 다루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