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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약초를 캔 사람의 이름까지 적게 한 이유

민성의담 · 열여덟 번째 이야기

약 이름 뒤에 붙은 고을과 사람, 그리고 채취한 달

세종은 지방에서 올리는 약재에 적을 내용을 하나 더 늘렸다. 무슨 약인지에 더해, 어느 고을의 누가 어느 달에 캤는지도 적어 올리라는 명령이었다.

1448년, 세종 30년 음력 1월 8일의 『세종실록』에 남아 있는 이야기다. 왕은 여러 도의 감사에게 약재를 제때 채취하고 알맞게 말리도록 당부했다. 때를 놓쳐 캐거나 제대로 말리지 않아 약의 성질을 잃는 일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

왕이 먼저 바로잡으려 한 일을 원문은 두 구절로 적는다.

採之以時,乾曝如法。

“때에 맞추어 채취하고, 정해진 방법에 맞게 말려라.”1

앞의 ‘시(時)’는 약을 먹을 때가 아니라 약초를 거둘 때를 말한다. 뒤의 ‘건폭(乾曝)’은 거둔 약초를 말리는 일이다. 약재를 준비하는 두 단계가 나란히 적혀 있다. 좋은 약을 구하라는 말에서 그치지 않고, 어디에서 잘못될 수 있는지를 짚은 명령이었다.

약재의 이름만 보아서는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어렵다. 왕은 그 약초를 거두었던 사람과 시간을 함께 적게 했다.

약초에도 달력이 있었다

세종 때에는 약초를 언제 거둘지 정리한 책도 나왔다. 1431년 유효통·노중례·박윤덕 등이 편찬한 『향약채취월령(鄕藥採取月令)』이다. ‘향약’은 우리 땅에서 나는 약재를 가리키고, ‘월령’은 달에 따라 할 일을 적은 것이다. 제목을 풀면 약초를 거두는 달력쯤 된다.2

이 책은 열두 달을 따라 약재를 배열했다. 처방을 찾는 사람의 순서와 약초를 캐는 사람의 순서는 다르다. 전자는 지금 앓고 있는 병을 생각하며 책을 펼치겠지만, 후자는 이번 달에 무엇을 거두어야 할지 먼저 알아야 한다.

책에 적힌 약재 이름이 실제 손에 쥘 약초가 되려면 그 사이에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산과 들에서 식물을 알아보고, 때를 기다려 거두고, 말리는 사람이다. 『향약채취월령』은 그 일을 위한 책이었다.

책 속의 이름과 마을에서 부르는 이름

이 책에는 한자로 된 약재명 곁에 우리말 이름도 적혀 있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이어서 한자의 소리와 뜻을 빌려 표기했다.2

이를테면 길경(桔梗) 곁에는 ‘都乙羅叱’이라는 표기가 전한다. 국어학에서는 이를 ‘도랏’으로 읽는다.2 오늘의 도라지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낯선 한자들이 줄지어 있는데 소리 내어 풀고 나면 익숙한 풀이 나타난다.

약재를 다루는 책이면서, 당시 사람들이 식물을 어떻게 불렀는지도 남겨 놓은 셈이다. 글을 쓰는 이에게 필요한 이름과 땅에서 약초를 찾는 이에게 익숙한 이름이 한 페이지에 함께 있다.

전하는 책은 후대의 필사본이라 베끼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도 있다.2 그래서 옛 이름 하나만으로 지금의 식물을 곧장 확정할 수는 없다. 다만 약초의 이름을 설명할 때 현장의 말을 함께 적으려 했다는 점은 또렷하다.

누가, 어느 달에 거두었는지

그로부터 17년 뒤의 실록으로 돌아가 보자. 세종의 명령 끝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某官某人某月所採某藥 “어느 고을의 누가 어느 달에 채취한 무슨 약인지.”1

오늘의 약재 관리 제도와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짧은 문구가 묻는 내용은 알아보기 쉽다. 이름이 맞는 약재를 가져왔다는 사실 외에도 확인할 것이 있었다. 거둔 때와 말린 방법, 그 일을 맡은 사람까지 알아야 했다.

기록의 초점은 관리와 책임에 있다. 그렇지만 읽는 사람에게는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손길도 드러난다. 의서에 처방을 적은 사람, 환자를 진찰한 사람 앞에 약초를 거둔 사람이 있었다.

한약을 이야기하면 으레 처방 이름과 약효부터 떠올린다. 세종 때의 이 기록을 읽고 나면 약재 이름 옆의 빈칸이 조금 달라 보인다. 어느 고을에서 왔는지, 누가 어느 달에 거두었는지. 옛 왕이 써넣으라고 한 것은 약초가 사람의 손을 거쳐 온 내력이었다.

함께 읽기

생강과 말린 생강이 만난 약첩 · 사흘 밤낮, 경옥고 한 항아리에 담긴 시간 · 영조가 약에 이름을 내린 날

출전과 참고 자료


  1. 국사편찬위원회, 『세종실록』 권119, 세종 30년 1월 8일 첫 번째 기사, 「국산 약재 채취를 적시에 제대로 처리할 것을 유시하다」. 날짜는 음력이다. 한문 원문의 채취·건조·상납 기록을 풀었으며, 짧은 인용문은 직접 번역했다. ↩↩↩

  2. 남풍현, 「향약채취월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편찬 연대와 편찬자, 월별 구성, 향명 표기와 ‘都乙羅叱·도랏’, 현존 필사본의 전사 문제에 관한 설명을 참조했다. 이 글은 해당 해제에 근거한 소개이며 원간본을 직접 대조한 것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