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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받은 아이가, 아이들을 위한 의서를 남기다

민성의담 · 열다섯 번째 이야기

『소아약증직결』 서문에서 만난, 한 아이의 기억이 다음 아이에게 닿는 길

어릴 적 아팠을 때 자신을 치료해 준 사람을,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않은 사람이 있다.

아이는 다섯이나 여섯 살 무렵 여러 차례 크게 앓았다. 그때마다 자신을 치료해 준 사람이 있었다. 송나라 의가 전을(錢乙), 자는 중양(仲陽)이었다. 훗날 어른이 된 아이는 그 일을 글로 남겼다. 『소아약증직결』 서문에 실린 편찬자의 회고다.1

서문에는 당시의 병을 가리키는 옛 이름들과 위태로웠던 고비, 전을의 치료로 나았다는 기억이 짧게 적혀 있다. 무슨 약을 며칠 먹었는지까지 알려 주는 상세한 의안은 아니다. 그 짧은 기록 뒤로 더 긴 이야기가 이어진다. 치료받았던 아이가 자라, 다른 아이들을 위해 그 의술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 날의 기억을 한 권의 책으로

서문을 쓴 염효충(閻孝忠, 판본에 따라 閻季忠으로 표기)은 집안에 전해 오던 전을의 처방이 처음에는 십여 개뿐이었다고 적었다. 세월이 흐른 뒤 지인들을 통해 병증을 설명한 글을 얻었고, 다시 여러 해가 지나 다른 처방들도 모았다. 또 다른 곳에서는 별본을 만났다.1

모은 기록은 순서가 뒤섞여 있었고, 겹치거나 서로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는 순서를 정하고, 중복을 덜어 내고, 잘못된 글자를 바로잡았다. 병증과 치료법을 위권에, 실제 치료했던 기록을 중권에, 처방을 아래권에 두었다.

처방 십여 개에서 시작해 글을 얻고, 다른 처방을 찾고, 뒤섞인 기록을 다시 묶었다. 어릴 때 자신을 치료해 준 의가에게 받은 고마움이 오랜 편찬으로 이어졌다.

그가 책을 전하려 한 이유도 서문 끝에 남아 있다.

使幼者免横夭之苦,老者無哭子之悲,此余之志也。

“어린이는 뜻밖에 일찍 목숨을 잃는 고통을 면하고, 어른은 자식을 잃고 우는 슬픔이 없게 하는 것, 이것이 나의 뜻이다.”1

책을 만들며 품었던 바람을 저자는 ‘차여지지야(此余之志也)’, 이것이 나의 뜻이라고 맺었다. 어려서 치료받았다는 개인의 회고가 다른 집 아이와 부모에게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오래된 의서의 문장인데도, 그 바람만큼은 어렵지 않게 읽힌다. 아이가 무사히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직 말하지 못하는 아이 앞에서

이 서문은 소아를 진료하는 일이 왜 어려운지도 먼저 이야기한다. 어린아이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고, 진찰을 받다가 놀라 울기도 한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변화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고 적었다.1

小兒多未能言 “어린아이는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1

아이는 어른처럼 아픈 곳을 또박또박 설명해 주지 않는다. 말할 수 있는 아이에게는 서툴더라도 끝까지 이야기할 시간을 주어야 하고, 아직 말이 어려운 아이에게는 표정과 몸짓을 더 살펴야 한다.

평소보다 일찍 안아 달라고 하는지, 좋아하던 놀이를 멈추는지, 밥과 잠이 달라졌는지. 보호자가 들려주는 이런 작은 일들이 진찰실에서는 도움이 된다. 집에서 지켜본 하루가 짧은 진찰을 보태 준다.

그렇다고 작은 변화마다 병명을 붙일 필요는 없다. 눈앞의 모습이 언제부터 달라졌는지 함께 짚어 보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소아 한의진료 안내에서도 식사·수면·배변과 성장의 흐름을 함께 살피는 이유를 이어 읽을 수 있다.

한약을 이야기할 때도 먼저 떠올릴 얼굴

『소아약증직결』은 이름처럼 병증과 약을 다루는 책이다. 그런데 그 처방들을 읽기 전에 만나게 되는 것은 어린 환자였던 사람의 기억이다. 무슨 약을 쓸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 그 약을 먹을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오늘 아이의 한약 치료를 상담할 때도 실제 불편과 생활의 변화가 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식사 시간이 힘든 아이, 밤에 자주 깨는 아이, 배가 아파 놀이를 멈추는 아이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변화를 돕고 싶은지 아이와 보호자가 함께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옛 회고에 적힌 호전을 오늘의 특정 치료 효과로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지금의 치료는 아이의 나이와 상태, 진찰 결과에 맞춰 판단해야 한다. 다만 한의학의 오래된 소아 기록에서, 아이 한 사람을 자세히 보려 했던 관심은 오늘도 읽어 볼 만하다.

돌보는 어른도 함께 쉬어 가기

아이가 아프면 어른의 하루도 달라진다. 잠든 얼굴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조금 먹은 밥의 양을 헤아리고, 평소처럼 웃는 순간에 마음을 놓는다. 그 시간을 혼자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아픈 아이 돌봄 안내도 아이의 말을 듣고, 조용한 놀이와 이야기, 곁에 있어 주는 시간을 권한다. 돌보는 사람 역시 쉴 수 있을 때 쉬고, 가능하면 다른 어른과 돌봄을 나누도록 안내한다.2 아이 옆에 오래 머물기 위해 보호자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물론 숨쉬기 힘들어하거나 깨우기 어려울 만큼 처지는 등 위급한 변화가 있다면 바로 진료를 받아야 한다.3 따뜻하게 곁을 지키는 일에는 필요한 도움을 제때 청하는 일도 들어 있다.

염효충은 어릴 적 자신이 치료받은 일을 책 첫머리에 적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무사히 자라기를 바라며 그 책을 전했다. 오래된 처방집을 펼쳤는데, 첫 장에서 만난 것은 한 아이가 어른이 되도록 간직한 기억이었다.

아픈 아이 곁에서 해 주는 일들은 대개 작다. 물을 건네고,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잠든 뒤 한 번 더 이마를 짚어 본다. 그중 어떤 일이 아이에게 오래 남을지는, 곁을 지키는 어른도 아직 모른다.

조선의 어린이 돌봄 기록은 정조의 『자휼전칙』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이에게 먹일 것과 함께 돌보는 여성의 식량과 옷까지 적어 둔 규정이다.

출전과 참고 자료


  1. 전을의 의론·의안·처방을 염효충이 편집한 『소아약증직결(小兒藥證直訣)』, 「서」. 위키문헌의 『소아약증진결(小兒藥證真訣)』 서문 전사, 수정판 2650895. 이 전사는 서명에 ‘真訣’, 서명자에 ‘閻季忠’을 쓰는 계열이다. ‘直訣’·‘閻孝忠’ 표기는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서지에서도 확인된다. 짧은 원문은 직접 번역했고, 어린 시절의 치료와 편찬 경위는 서문의 회고를 요약했다. 전사 편집의 이용조건은 위키문헌의 CC BY-SA 4.0 안내를 따른다. ↩↩↩↩↩

  2. NHS, Looking after a sick child. 아이의 말을 듣기, 조용한 활동과 휴식, 보호자의 휴식과 돌봄 분담에 관한 안내. ↩

  3. NHS, When to get urgent medical help for babies and children under 5. 영유아의 호흡곤란과 깨우기 어려움 등 즉시 평가가 필요한 신호에 관한 안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