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 느긋한 이름 아래 모인 여덟 약재¶
민성의담 · 스무 번째 이야기
처방을 설명하는 글에서, 밥이 줄고 자꾸 눕고 싶은 사람을 만나다
소요산. 산 이름처럼 들리기도 하고, 어디론가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여기서 산은 산봉우리 산(山)이 아니라 가루약 산(散)이다. 앞의 소요(逍遙)에는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노니는 뜻이 담겨 있다.
『장자』의 첫 편 「소요유」에서 만나는 말이기도 하다. 큰 나무 아래 편히 누워 지내는 장면에 ‘소요’가 나온다.1 다만 같은 말이 쓰였다는 이유만으로 처방 이름을 『장자』에서 직접 따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의서에는 의서 나름의 설명이 남아 있다.
이름은 느긋한데, 몸은 편치 않았다¶
송대의 처방집 『태평혜민화제국방』은 소요산을 「부인의 여러 질환을 치료함」이라는 편에 실었다. 처방 설명의 첫머리는 이렇다.
治血虛勞倦。
“혈이 허하고 지쳐 피곤한 것을 치료한다.”2
이는 책이 제시한 전통적 주치다. 뒤에는 팔다리의 통증, 무거운 머리, 입과 목의 마름, 월경의 불규칙함 등이 이어진다. 그 사이에는 길지 않지만 유독 쉽게 읽히는 네 글자가 있다.
減食嗜臥
“먹는 양이 줄고, 자꾸 누우려 한다.”2
어려운 병명보다 먼저 사람의 하루가 그려진다. 밥을 전만큼 먹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기보다 눕고 싶은 상태다. 실제 어느 한 환자의 일기를 적은 것은 아니다. 처방에 해당한다고 본 여러 증상을 모아 놓은 글이다. 그 안에 식탁과 잠자리에서 알아챌 만한 변화가 들어 있다.
소요산이라는 이름만 듣고 마음을 가볍게 하는 약이라고 짐작했다면 원문은 훨씬 많은 것을 살피고 있다. 지친 몸, 식사, 통증, 열감, 월경의 변화가 한데 적혀 있다. 오늘의 특정 정신질환이나 빈혈 하나로 그대로 옮겨 읽을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여섯 가지를 준비하고, 두 가지를 더하다¶
『국방』의 약재 목록에는 감초·당귀·복령·백작약·백출·시호, 여섯 가지가 나온다. 그런데 소요산을 여덟 약재의 처방으로 설명하는 것은 왜일까. 답은 목록 바로 아래 만드는 방법에 있다.2
원문은 먼저 약재들을 거칠게 가루 내도록 한다. 이어 달일 때에는 구운 생강 한 덩이를 잘라 넣고 박하를 조금 더하라고 적었다. 생강과 박하까지 세면 여덟이다. 여섯 가지를 적은 목록도, 여덟 가지를 말하는 설명도 어느 부분을 세었는지 알면 이해가 된다.
끝에 ‘산’이 붙었다고 가루를 그대로 삼키는 약이라고 생각해도 여기서는 맞지 않는다. 이 처방의 제법은 가루 낸 약을 물에 달이고 찌꺼기를 거르는 방식이다. 이름의 마지막 글자보다 제법의 문장이 더 자세한 사정을 알려 준다.
이 여덟 약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후대의 『의방집해』에 한층 자세하다. 당귀와 작약은 혈을 기르는 쪽으로, 감초와 백출은 속을 조화롭게 돕는 쪽으로 설명한다. 시호·복령·생강·박하의 역할도 차례로 풀어 놓았다.3 느긋하게 들리는 이름 아래 여러 약재가 저마다 맡은 일이 있었던 셈이다.
왕앙이 이름을 풀이한 한 문장¶
청대 의가 왕앙은 그 설명 끝에 이렇게 적었다.
諸証自已,所以有逍遙之名。
“여러 증상이 저절로 그치니, 그래서 소요라는 이름이 있다.”3
불편한 증상에서 벗어나 편안해진다는 뜻으로 처방 이름을 풀이한 것이다. 여기서 ‘저절로’는 치료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앞에서 설명한 약재의 작용이 어우러진 결과를 말한다. 또한 이것은 처방이 실린 송대 『국방』보다 뒤에 나온 왕앙의 해설이지, 처음 이름을 지은 사람의 증언은 아니다.
옛 글의 낙관적인 표현을 오늘의 효과 보장으로 읽을 수는 없다. 다만 이름을 붙이고 풀이한 사람들이 바라던 모습은 짐작할 수 있다. 입맛을 잃고 자꾸 눕고 싶던 사람이 조금 덜 불편하게 지내는 것. ‘소요’라는 큰 말이, 약첩 앞에서는 그만큼 일상적인 바람으로도 들린다.
소요산의 구성과 현대 연구는 처방 문서에서 이어 읽을 수 있다. 여덟 약재 중 당귀가 품고 있는 ‘돌아온다’는 말에도, 이 느긋한 처방 이름 못지않게 여러 사연이 남아 있다.
출전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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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내편 「소요유」 말미, 혜자와 장자의 큰 나무 문답. 위키문헌 원문. 단어의 문학적 맥락을 소개했으며 소요산 명명의 직접 출전으로 제시한 것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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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혜민화제국방』 권9 「치부인제질(治婦人諸疾)·소요산(逍遙散)」. 중의급성 전사, 해당 처방의 주치·구성·제법. 약재 수는 본문 여섯 가지와 달일 때 더하는 생강·박하를 구분했다. 인용문은 직접 번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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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앙, 『의방집해』 「화해지제(和解之劑)·소요산」. 원문 전사. 배합 해설과 ‘諸証自已,所以有逍遙之名’을 참조하고 직접 풀었다. 송대 처방 기록과 후대의 방론·명명 해석을 구별했다. ↩↩